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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계약직 신>은 결국 정상성 규범과,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질서와, 우리의 인식 이전에 있는 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(제국주의와 식민지와 주변부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, 정신병과 신경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, 더 나아가 무대 자체는 다분히 마르키온적인데, 그런데 그런 것들은 일단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). 로안의 기억-덮어쓰기, 테네브로즈의 전두엽 절제, 메기도의 (죽여 달라는 요구와, 그에 따른) 망각은 교집합인 부분이 있는 벤 다이어그램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. 공통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넷은 동치로 놓일 수 없고, 동치로 놓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제의식을 여전히 공유합니다. 제가 <수정 요새>를 쓰면서 문학정신 1992년도 7·8월호를 다시 들춰봤다는 사실을 말하려 합니다. 왜냐하면 140화까지 쓰고서야, 그제야, 이 글이 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 아래 직조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(방법론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포스트모던인데, 위에 말했다시피 이 글에서 논하기엔 시기상조이므로 건너뛰겠습니다). 따지고 보면 이 글은 언제나 패러디와 혼성모방으로 이루어진 메타텍스트였고, 스스로도 그 점을 계속 감안하면서 써 왔는데(고비 사막의 여섯 도시를 대륙에 세우고, <El Critico>를 인용하고, <크리스털 세계>의 공간을 빌리고, 에픽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신화와 근대를, 뉴위어드-SF적 외삽을, 그리고 키치/컨템포러리의 요소들을, 모더니즘 텍스트마저 의도적으로 접붙인 것처럼) 어째서 이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집니다. 아마도 줄곧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. 2021년의 이 시점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소환한 다음 그걸 재료로 뭘 하려 하다니 참 우스운 일입니다. 문학정신 1992년도 7·8월호의 맥락에서 생각하더라도, 이인화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과 그게 빚어낸 논란보다도 박근혜 게이트로 더 유명한 사람이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?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론장에서도 유행이 지났고, 애당초 문예와, 이론과, 문예이론 모두가 유행이 지나버린 이 시대에(심지어 정치신학과 메시아적 종말론은 한국 땅의 이야기조차 아니죠), 저는 도대체 문피아에서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? 어쨌거나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(1930년, 혹은 1950년에나 했으면 딱 좋았을 이야기를 60-70년대의 방법론으로 2020년에 쓰고 있는 겁니다). 그리고 그 착오가 <계약직 신>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이겠지요. 물론 이 글에서 그러한 맥락을 탈각시키더라도 고전 비극과 서사는 남게 될 것입니다.